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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9절이 선포하는 화평의 실재를 살펴친다. 자기 방어를 끝내고 관계의 어긋남을 바로잡는 하나님의 아들이 누리는 권능과 샬롬의 통치를 성경적 직관으로 선포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어지는 통치적 영광
십자가로 세운 화평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증명하는 사명
![[팔복 제 ⑦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 되심을 본받아 분열된 세상 속에 평화를 심는 성도의 사명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화평의 권세를 선포한다. 요나의 신앙 저널](https://blog.kakaocdn.net/dna/cwNEFC/dJMcahDrei7/AAAAAAAAAAAAAAAAAAAAAClmYfgm4kE382QlSvXIAGpfiEH6SM1ZNcjHVV4tOKZv/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80239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AkbGX%2F1d%2FcxLmgBJx0KlPNkYVZs%3D)
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인간의 삶을 장악하며 관계의 영역까지 넓어지는 장엄한 질서의 전개다. 그 흐름의 정점에서 마태복음 5장 9절은 관계의 부딪힘을 다루는 백성의 방식을 드러낸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 이 선언은 복을 소유한 존재에게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통치 행위다.
화평은 인간의 사회적 기술을 뛰어넘어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권능으로 나타난다. 구약이 미리 보여준 샬롬(שלום, 온전함)의 질서가 신약의 에이레네(εἰ레네, 평강)로 이어지며 고린도전서 14장 33절이 선포하듯 화평의 하나님은 무질서를 물리치고 새로운 관계를 세우신다. 예수는 이 화평을 복의 결과로 확정하신다. 화평을 일구는 행위는 이미 임한 복의 실제 모습이 밖으로 흘러넘쳐 깨어진 세상을 다시 세우는 역동적인 사역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어긋남이 바로잡힌 상태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화평의 핵심이다. 히브리서 12장 14절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을 따를 것을 권면하며 이것이 주를 보는 통로임을 밝힌다. 복을 소유한 존재는 갈등의 현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 하늘의 질서를 세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태도는 사라지며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고한 신분이 관계를 주도한다.
팔복의 일곱 번째 선언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임이 입증되는 영광스러운 현장을 증언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관계 속에서 실제로 나타내며 존재의 근원을 증명한다. 이제 우리는 단어의 뜻을 시작으로 화평의 기원이신 하나님을 거쳐 이 권능이 우리 삶에 어떻게 뿌리 내리는지 살핀다.
에이레노포이오스: 깨어진 관계 속에서 화평을 세우는 자
마태복음 5장 9절의 핵심 단어인 에이레노포이오스(εἰρηνοποιός, 화평을 만드는 자)는 멈춰 있는 상태를 넘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통치의 행위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단순히 화평한 성격을 소유하거나 갈등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단계를 거쳐 이미 파괴된 관계 한가운데로 직접 들어가 하나님의 질서를 새로 세우는 창조적 존재를 의미한다. 화평은 하나님 나라의 법도가 관계의 현장에서 제 위치를 찾도록 만드는 실제적인 힘으로 나타난다.
야고보서 3장 18절은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라고 선포하며 화평이 적극적으로 '심는' 행위임을 밝힌다. 이는 분열과 다툼으로 황폐해진 땅에 하나님 나라의 평강이라는 씨앗을 던지는 통치적 결단을 뜻한다. 화평은 하나님의 의가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열매로 맺히도록 길을 만드는 사역으로 존재한다. 심는 자의 수고가 전제될 때 비로소 깨어진 관계는 하늘의 생명력으로 채워진다.
히브리서 12장 14절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라고 권면하며 화평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반드시 추구해야 할 통치의 필수 방향임을 확증한다. 화평을 일구는 자는 흩어진 관계의 파편을 모아 하늘의 질서로 다시 구성하며 통치의 실제 모습을 증언한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이 선포하듯 화평의 하나님은 무질서를 물리치고 새로운 관계의 기초를 세우시는 분이시며 통치 백성은 이 신적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에 대행자로 참여한다.
에베소서 4장 3절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명령하며 화평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통치적 결속력임을 보여준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자신의 안위보다 공동체의 온전함을 위해 갈등의 핵심부로 담대하게 들어간다. 골로새서 3장 15절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선언을 통해 화평이 성도의 실존적 사명임을 확증한다. 이 일은 오직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에너지를 소유한 자만이 감당하며 그 과정을 통해 관계의 어긋남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바로잡힌다.
결국 화평을 만드는 역사는 자기 방어를 끝내고 타인의 영역으로 사랑을 가지고 전진하는 존재를 통해 실제 모습으로 나타난다. 관계의 파괴를 수습하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이 행위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현실에 강력하게 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에이레노포이오스는 관계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평강을 다시 세우고 모든 화평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 속에 비춘다. 이러한 사역은 이제 화평을 직접 창조하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통치 원리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화평의 근원이자 통치자
화평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시작되는 통치의 성격이다. 하나님은 존재의 모든 어긋남을 바로잡고 온전한 질서를 창조하시는 화평의 근원으로 존재하신다. 로마서 15장 33절은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으로 선포하며 화평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마다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임을 밝힌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은 "평강의 주께서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라고 증언하며 하나님이 모든 상황 속에서 화평을 공급하시는 주관자이심을 확증한다. 이는 화평이 위로부터 아래로 흐르는 신적 권능이며 통치자가 백성에게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안정의 질서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화평은 파괴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직접 개입하는 역동적인 힘이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은 화평의 하나님이 무질서를 물리치시는 분임을 선언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현장마다 조화로운 체계가 세워짐을 의미한다. 빌립보서 4장 9절은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라고 약속하며 하나님의 실제 모습이 곧 화평의 임재와 직결됨을 선포한다. 화평은 하나님의 성품이 관계라는 통로를 통해 흐를 때 나타나는 거룩한 생명력으로 나타나며 인간이 스스로 메울 수 없는 관계의 깨어진 틈을 완벽하게 수선한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화평을 통해 견고하게 유지된다. 사사기 6장 24절은 하나님을 "여호와 샬롬"으로 고백하며 화평이 하나님의 이름이자 존재 그 자체임을 증언한다. 이는 화평이 정서적 안정을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되는 통치적 영토임을 밝힌다. 에베소서 2장 17절은 하나님이 화평의 언어를 가지고 먼 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분임을 확증한다. 이러한 선제적인 사역은 화평이 인간의 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증명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선언은 바로 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이 누리는 영광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통치 백성이 관계의 현장에서 화평의 질서를 대행하며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그대로 반복하기를 원하신다. 고린도후서 13장 11절은 화평을 따르는 삶이 평강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화평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시며 그분의 아들들이 거룩한 질서의 재건에 참여하는 것을 통치의 기쁨으로 삼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화평은 이제 구약의 구체적인 '샬롬'의 역사를 통해 실제적인 실행 방식들로 구체화된다.
구약의 샬롬은 관계의 질서 회복
구약 성경에서 화평은 히브리어 샬롬(שלום, 온전함, 평강)의 개념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 질서로 나타난다.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이웃 사이의 어긋남이 완벽히 바로잡힌 상태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창조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샬롬의 현장이었다.
민수기 6장 26절의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라는 축복은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관계의 온전함이 회복됨을 선포한다. 이는 화평이 하나님의 얼굴빛 아래서만 성취되는 통치적 선물이며 위로부터 아래로 임하는 권능의 질서임을 밝힌다.
구약의 제사 제도 중 화목제는 이 깨어진 샬롬을 회복하기 위한 실제적인 실행 방식으로 나타난다. 레위기 3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화목을 위해 드려지는 제사의 규례를 상세히 기록하며 화평이 오직 언약의 법도 안에서 성취됨을 보여준다. 화목제물은 하나님과 인간이 한 상에서 먹고 마시는 친교를 나타내며 이는 화평이 추상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구체적인 관계의 회복으로 나타나는 사건임을 확증한다.
신명기 27장 7절은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라고 명령하며 화평이 공동체적 기쁨의 근거임을 선포한다. 이러한 제사적 배경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단순히 갈등을 덮는 태도를 물리치고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관계의 식탁을 다시 세우는 구체적인 사역자임을 보여준다.
선지자들의 외침은 장차 임할 메시아를 '평강의 왕'으로 예고하며 화평의 통치를 더욱 구체화한다. 이사야 9장 6절은 평강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화평의 풍성함이 끝이 없을 것임을 선포한다. 또한 이사야 52장 7절은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라고 노래하며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가지는 영광을 높인다.
시편 85편 10절은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라고 선포하며 화평이 하나님의 공의와 결합된 통치적 완성임을 증언한다. 이는 구약 전체가 갈망해 온 화평이 개인의 심리적 안정을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 온 우주적 질서의 회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구약의 역사는 샬롬이 무너진 현장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다시 개입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시편 34편 14절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라고 권면하며 화평이 성취해야 할 능동적인 통치 목표임을 강조한다. 미가 6장 8절은 하나님이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원하심을 밝히며 화평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필연적 태도임을 증언한다.
하나님은 불의와 분열의 현장을 물리치고 자신의 백성을 다시 화평의 질서 안으로 불러모으신다. 에스겔 37장 26절은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라고 약속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화평을 통해 영원히 지속될 것임을 확증한다. 이러한 샬롬의 약속은 이제 그 실제 모습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벽한 성취를 맞이한다.
예수는 화평의 완성자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이 갈망해 온 샬롬을 자신의 몸으로 완성하신 화평의 실제 모습이다. 예수는 단순히 갈등을 중재하는 교사를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영원히 끝내시는 평강의 왕으로 임하신다. 에베소서 2장 14절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선포한다.
이 선언은 화평이 예수의 존재와 사역 그 자체임을 밝힌다. 십자가는 죄로 인한 모든 어긋남을 없애고 새로운 통치 질서를 창조한 현장이다. 관계의 파괴를 불러온 죄의 담이 허물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평강은 인류의 삶 속으로 들어와 실제적인 통치를 시작한다.
골로새서 1장 20절은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라고 증언한다. 이 말씀은 예수의 화평이 개인의 심리적 위로를 물리치고 온 우주적 질서를 회복하는 강력한 통치적 결단임을 보여준다.
예수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류를 위해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끊어진 화평의 길을 다시 세우신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라고 기록하며 화평이 예수의 희생을 통해 성취된 역사적 실제 모습임을 확증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은 십자가에서 완성된 이 화목의 질서를 관계 속에 그대로 적용하는 권능을 의미하며 이는 자신의 의를 포기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화평을 앞세우는 상속자의 태도다.
예수는 화평의 방식을 자신의 삶으로 구체화하신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화평이 하나님 나라의 진실 위에 세워지는 독보적인 평강임을 확증한다.
예수는 갈등의 현장을 정면으로 마주하시며 사랑으로 관계를 다시 정렬하신다. 마태복음 26장 52절에서 칼을 거두라 하신 예수의 명령은 화평이 물리적 힘이나 복수의 논리를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로 나타남을 증언한다. 화평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관계 속에 세우는 강력한 의지로 나타나며 깨어진 틈을 하늘의 지혜로 메워 온전하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은 신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로마서 5장 10절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이라고 선포하며 화평이 새로운 신분의 시작임을 밝힌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은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라고 선언한다.
이 말씀은 화평이 우리가 홀로 성취해야 할 고단한 숙제를 물리치고 이미 부여받은 영광스러운 직분임을 증언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화평을 이루신 것처럼 그를 믿는 자들 역시 아버지가 하시는 화평의 사역을 삶에서 반복하며 통치의 열매를 맺는다. 예수의 통치가 임한 중심은 이제 모든 충돌을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다시 세우는 화평의 시작점으로 존재한다.
![[팔복 제 ⑦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인간의 혈기를 버리고 성령의 지배 아래 참된 화평을 이루어내는 신앙의 현장을 나타낸다. 땅 위에서 하늘의 평화를 경작하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확장하는 복을 선포한다. 요나의 신앙 저널](https://blog.kakaocdn.net/dna/DfYlU/dJMcacB9Ml1/AAAAAAAAAAAAAAAAAAAAAGsPS4sCytGj36fxylJD6_gKMnks8phWAxh9Fpc4jlMM/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80239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yYUWhIiGVD7Mk3VNXt8Z7KFmws0%3D)
성령: 화평을 지속시키는 내적 통치자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화평은 성령님의 나타남을 통해 각 사람의 실제 삶으로 자리 잡는다. 성령은 하나님 나라의 화평이 일시적인 감정을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 지속적인 삶의 질서로 유지되게 하시는 통치의 대행자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은 성령님의 열매 중 하나로 화평을 선포하며 이것이 인간의 노력을 물리치고 성령이 거하심으로부터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임을 밝힌다.
로마서 14장 17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 안에 있는 평강임을 증언하고 화평이 성령 안에서 누리는 통치의 본질임을 확증한다. 성도는 이제 자신의 인내를 물리치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권능으로 화평의 상태를 견고하게 유지한다.
성령의 통치는 내면의 분열을 바로잡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견고하게 보존한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관계의 부딪힘 속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기억나게 하시며 화평을 선택할 힘을 공급하신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은 "평강의 주께서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라고 선포하며 성령이 모든 상황 속에서 화평의 주관자로 나타나심을 보여준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은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임을 밝히고 갈등의 순간에 화평의 법도를 떠올리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증언한다. 빌립보서 4장 7절은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통치적 보호막임을 확증하며 존재의 안정을 약속한다.
또한 성령은 깨어진 관계를 다시 세우는 구체적인 지혜와 권능을 주신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자신의 꾀를 물리치고 성령이 주시는 마음으로 갈등의 현장에 들어간다. 에베소서 4장 3절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권고하며 화평이 공동체를 묶는 강력한 통치적 결합력임을 밝힌다.
공동체 내에서 의견의 대립이 발생할 때 성령을 모신 자는 자기주장을 앞세우는 대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화해의 언어를 선택한다. 골로새서 3장 15절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명령을 통해 화평이 부르심에 합당한 통치적 사명임을 확증한다. 에베소서 6장 18절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깨어 구하는 태도가 화평을 지키는 실질적인 무기임을 보여준다.
결국 성령의 사역 안에서 화평은 중단되지 않는 통치의 흐름으로 존재한다. 성령은 하나님 나라의 평강이 관계 속에서 영원히 유지되도록 나타나시며 화평하게 하는 자의 발걸음마다 하늘의 질서를 세우신다. 로마서 8장 6절은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기록하며 성령의 통치를 받는 존재의 내면이 평강으로 가득 차게 됨을 선포한다.
이 통치는 존재의 중심을 거쳐 타인과 세계로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나타낸다. 성령을 모신 자는 화평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현실에 적용하며 모든 관계를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다시 정렬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삶으로 증명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어지는 영광
마태복음 5장 9절은 화평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선명한 통치적 특징임을 증언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 이 선언은 복을 소유한 성도가 관계의 어긋남을 바로잡고 하늘의 질서를 현실에 세우는 존재임을 확증한다.
화평은 개인의 기질이나 성품을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의 권능으로 존재한다. 고린도후서 13장 11절은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라고 선포하고 화평을 구하는 성도의 삶에 하나님의 실제 모습이 임하심을 약속한다.
성도는 이제 갈등을 피하는 수동적 태도를 물리치고 깨어진 관계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화평의 사역자로 산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와 화평을 이루신 것처럼 성령의 통치를 받는 성도는 분열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화목을 실제로 나타낸다. 베드로전서 3장 11절은 "평화를 찾아 그것을 따르라"라고 명령하며 화평이 성도가 추구해야 할 능동적인 통치 방향임을 밝힌다.
성도는 가정 내 불화나 공동체의 갈등 상황을 마주할 때,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는 태도를 물리치고 하늘의 법도로 관계를 다시 정렬하는 강력한 통치적 행위를 선택한다. 시편 37편 37절은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라고 선포하며 이 길을 걷는 자의 최종적인 승리를 약속한다.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이 땅에서 그대로 반복한다는 뜻이다. 성도는 화평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관계 속에서 명확히 드러낸다. 요한복음 13장 35절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곧 제자됨의 증거임을 확증한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 나라가 파괴된 관계를 어떻게 치유하며 새로운 질서로 완성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언이다. 복을 소유한 자는 자신을 비방하는 자 앞에서 침묵하며 오히려 평강을 선포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자신을 완벽히 장악했음을 세상에 보여준다.
결국 화평은 복의 실제 모습이 관계의 영역까지 완전히 장악했음을 알리는 영광스러운 선포다. 성도는 이미 부여받은 화평의 권능을 가지고 오늘 마주하는 모든 충돌을 하나님 나라의 영광으로 바꾸어 낸다. 골로새서 3장 15절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라고 선언하며 화평이 성도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다스리는 통치 원리임을 밝힌다. 마음의 중심에 평강의 왕을 모신 자는 그 발걸음마다 하늘의 샬롬을 심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누리는 참된 복을 온 땅에 증언하며 통치의 지속성을 세운다.
참고문헌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민수기 6:26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의 시선)
레위기 3:1 (관계 회복을 위한 화목제의 법도)
이사야 9:6 (평강의 왕으로 임하시는 메시아)
에베소서 2:14 (막힌 담을 허무신 예수의 화평)
고린도후서 5:18 (화목하게 하는 직분의 수여)
갈라디아서 5:22 (성령의 열매로서의 화평)
로마서 14:17 (성령 안에 있는 평강의 나라)
야고보서 3:18 (화평으로 심어 거두는 의의 열매)
베드로전서 3:11 (평화를 찾아 따르는 통치적 자세)
🌟 팔복(The Beatitudes) 시리즈 안내
- - 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 ②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 ③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 - ④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 - 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 - ⑥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 ▶ ⑦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현재 글)
- - ⑧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요나의 신앙 저널
요나의 신앙 저널 | yonafaith.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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