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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이유는 기도와 말씀 앞에 먼저 서기 위함입니다.
하루의 일과에서 글에 몰입할수록 기도가 뒷전으로 밀리고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필의 속도를 내려놓고 기도로 먼저 서고자 합니다. 글이 자주 올라오지 않더라도 기도하며 기다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기도 가운데 병환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앞에 돌아와 금식하며 회개의 기도를 놓지 않고 있던 차에 깊은 병에 들어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운 병중에 있으면서도 기도하면서 집필을 달려온 지 어느새 8개월을 훌쩍 넘겼습니다.
병환이 나아지려는 기미가 있을 때에는 더 글 쓰기를 멈추지 않고자 밤을 새 가며 매달렸고, 병이 깊어지면 잠시 글 쓰기를 마치 호흡을 가다듬듯 천천히 쓰면서도 나의 하나님, 주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널리 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아 왔습니다.
지금 세상은 종말을 향해 거친 숨을 내뿜듯 무섭게 달리면서 채찍을 가하는 자의 손에 빠져드는 형국은 마지막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지난 8, 90년대 한국 교회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부흥의 기대에서 2000년대의 물질에 대한 오욕과 남용이 흥청대던 시대를 지나오면서 이제는 당연하듯 배도가 널리고 회개가 사라지는 시대를 우리는 목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필자 또한 먹고 산다는 세상 논리로 주의 명령을 무시하고 세상과 연합하면서 기도와 눈물이 멈추고 하나님을 일부러 잊어버리고 망각의 시간 속에 세상의 유희와 즐거움에 빠져들며 살아왔던 시기였습니다.
마침 더는 보고만 계실 수 없던 주께서 부르심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를 버리지 마소서” 애달프듯 깊은 시름과 통곡, 회개의 금식과 기도로 몸부림치던 지난 시간들이 제게는 다시 얻은 생명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금 더 깊은 병중에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할 시간이 다가올지라도 주께서 주신 시간을 놓칠 수 없어 잠시 집필을 멈추고 오직 기도에 전념하며 그가 명하신 영원한 생명을 붙들고자 합니다.
다시 병중에서 회복하여 이전과 같이 온전하여진다면 마음과 뜻을 다하여 집필에 매진할 것이며, 그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하여도 지금까지 집필할 수 있었던 은혜에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올립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세상의 이치와 세상의 논리, 세상의 법정으로 교회를 단죄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면 도전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양 속이고 거짓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의 종이 잘못된 길로 걷고 있는 것을 보거든 세상의 기준으로 무리를 모아 공격하고 법정에 넘기기보다 엎드려 통곡하며 눈물로 하나님 앞에 아뢰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지키는 길이며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향입니다.
또 믿음으로 헌신한 것을 아까워하며 다투고 사용을 문제 삼아 세상의 법정으로 가져가는 일 또한 멈추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받은 것을 다시 자신이 거두어 가고자 발버둥 치는 패악한 모습일 뿐입니다.
세습 문제 역시 무리를 이루어 대립하고 공동체를 흔드는 방향으로 흐를 때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영혼이 무너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 속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사건 등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나뉘고 신앙이 갈라지는 일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당을 짓고 맞서는 흐름에 쉽게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분쟁은 커지고 공동체는 흔들리며 신앙은 사람을 따라 갈라지는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각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분쟁으로 몰아넣기보다 눈물로 돌아보며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 기회는 항상 같은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으며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때는 분명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거짓된 가르침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곳곳에서 자칭 예수, 자칭 하나님이라 말하는 이들이 나타나 수많은 영혼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던 이들까지 그 앞에 서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하나님의 이름이 가볍게 여겨지고 그 권위가 왜곡된 채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마음이 다른 방향에 붙잡힌 상태가 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진리를 붙들고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그들을 지키십니다. 그들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또한 가룟 유다와 같은 길에 서지 않도록 스스로를 살피며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고 기도로 확인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겉모습으로 신앙을 유지하는 삶 보다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전심으로 회개하며 나가는 것만이 새롭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주 오래전 필자가 곤경에 처한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친한 이웃이자 저를 양육하던 부부에 의한 거짓된 이간질로 인해 오해를 받았고, 목사님께서 직접 찾아와 강하게 따지며 책망하셨습니다.
전혀 사실이 아님에도 거짓은 사실로 만들어지고 신앙이라는 포장으로 부풀려져 저와 목사님 내외를 원수와 같은 사이로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사실이 아님을 호소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저는 근심하면서도 매일 하던 습관대로 그날 저녁에도 하나님께 호소하고 아뢰며 기도하였습니다.
며칠 뒤 목사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내외분이 동시에 동일한 꿈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제 말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속이는 노략질을 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사과를 전하셨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장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이 일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누구든지 이러한 상황에 놓일 수 있으며, 깨어 있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을 등지고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됨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일이 닥칠 때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말씀과 기도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가 우겨쌈 당하는 것을 마냥 바라만 보지 않으시고, 육체의 아비가 자신의 자녀를 해악에서 건져내기 위해 애를 쓰듯 하나님은 그보다 더하신 일에도 자녀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잘못된 길로 갈 때에는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돌아오면 기뻐하셔서 목욕으로 더러운 때를 벗겨주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새 옷으로 입히시듯 지난날의 모든 더러움을 회개케 하여 씻어 주시고 도말하셔서 새롭게 하십니다.
저 역시 나약한 존재로 하나님을 등지고 제 길을 따라가며 살아온 시간을 지나왔고, 그 과정 속에서 다시 붙들어 주신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 은혜 속에서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 다시금 손을 내미시고 이제 돌아오라 하신 것은 한 영혼이라도 그 손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마음임을 깨달았습니다.
돌아오기를 기다리신 하나님의 마음은 한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며 깊은 뜻으로 남습니다. 지금도 감사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따라 살아가기를 구하며 하루 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따르는 대상에 속하게 되며 그 선택은 삶 전체로 이어집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며 그 결과는 자신의 삶으로 책임지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 제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돌아보며 기도하고 그 부분이 삶을 이끌지 않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시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필자는 한 가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구하며 가장 연약한 부분을 붙들고 기도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돌아보사 제가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시고,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시면 제가 큰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정직하게 서겠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이 기도를 이어가며 그 끈을 붙들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주께서 이 미천하고 지렁이 같은 저를 구원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를 다시 붙드신 그 사랑을 기억하며 찬양을 올립니다.
이제 바라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길 위에서 맡겨진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그 뜻이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주이심을 전하는 일에 기쁨으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