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신앙 저널 | 말씀 속에서 시대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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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연합이며, 하나님이 공동체 가운데 머무시는 방식이 드러나는 신앙의 자리다.
 

사랑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연합

코이노니아는 성령 안에서 서로를 품고 나누는 교회의 내적 생명이다.

[코이노니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귐] 성령 안에서 떡을 나누며 사랑과 나눔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연합을 선포한다. 성도의 교제를 통해 증명되는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나타낸다. 요나의 신앙 저널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공동체 가운데 머무시며 그분의 사랑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실제로 드러나는 연합을 뜻한다. 이 연합은 말씀 앞에 모이고 서로의 삶을 기도로 떠받치는 시간들 속에서 깊어지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현실로 다가온다.
 
코이노니아가 살아 있는 공동체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곁의 사람을 품고 받은 사랑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며 하나님이 세우시는 공동체의 모습이 차츰 드러난다. 코이노니아는 교회의 중심을 이루는 삶의 흐름이며 공동체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 준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성도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은 공동체를 붙들어 주는 힘이 된다.
 
성령께서 주시는 나눔이 공동체 안에서 이어질 때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머무시는 은혜의 범위로 드러난다. 이 연합은 교회의 정체성을 세우고 성도의 신앙을 하나님께 더 가까운 지경으로 이끈다.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의 걸음 안에서 확인되며 공동체는 그 걸음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코이노니아의 오해와 본질

오늘날 교회에서 교제를 떠올리면 대개 식사, 대화, 소모임 같은 활동이 먼저 생각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분명 소중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성경이 말하는 교제의 깊이에 닿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코이노니아를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과정 정도로 이해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교제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코이노니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생명의 나눔이며,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으키신 연합의 열매다.
요한일서 1장의 말씀은 이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이 말씀은 교제가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먼저 열리고, 그 사귐이 사람들 사이의 만남을 새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하나님과 연합된 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 때 코이노니아는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그 자리에서 생명의 나눔이 이어진다.
 
그래서 코이노니아는 활동이 아니라 관계의 근원을 보여주는 말이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실제가 되면 사람 사이의 만남도 달라진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곁의 사람을 품고 받은 생명이 또 다른 이에게 흘러가며 교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현실에서 신앙은 깊어진다.


복음에의 참여 - 하나님이 시작하신 나눔

사도 바울은 교제의 시작을 언제나 복음에서 찾았다.
빌립보서 1장 5절은 교제가 복음에 참여하는 지경에서 열린다고 전하며 바울이 말한 코이노니아의 중심을 보여 준다. 바울에게 교제는 협력의 활동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합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으로 들어가는 연합이며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 함께 서는 현실이었다.
 
복음은 성도를 하나로 묶는 생명의 흐름이며 공동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다. 성도는 그 생명에 참여함으로 하나가 되었고 이 참여는 하나님이 먼저 여신 은혜의 범위에서 드러났다. 하나님이 먼저 부르셨고 그 부르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셨다는 사실 때문에 교제가 열렸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이 흐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주님의 낮아지심을 통해 성도에게 생명의 길이 열렸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이 나눔이 교회의 교제가 되는 기초가 되었다. 공동체는 이 나눔이 깊어지는 지경에서 서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게 된다. 코이노니아는 사람 사이의 관계나 제도로 설명되지 않고 하나님이 먼저 열어 두신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드러난다.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 - 교제의 중심

고린도전서 10장은 교제가 어디에서 열리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니라” 성찬은 예배 중의 반복된 절차로 설명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현실이며 공동체가 주님과 연합된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분의 피와 몸에 참여한다는 말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생명에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 참여를 통해 성도를 언약 안으로 부르셨고 그 은혜의 범위에서 마음이 서로를 향해 열린다. 교제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나누신 생명을 따라 움직이는 신앙의 흐름이며 하나님이 여신 길 안에서 공동체가 다시 하나로 모이는 현실이다.
 
성찬의 떡과 잔은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물질을 넘어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표징이다. 이 표징은 임재의 약속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신앙의 지경이며 교회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성찬은 교회의 중심을 세우는 핵심이고 코이노니아는 이 현실에서 다시 살아난다. 떡과 잔을 받는 순간 공동체 안에 흐르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확인되고 교회는 하나님 앞에 선 존재로 드러난다.

 

코이노니아의 실천 - 삶으로 이어지는 나눔

참된 코이노니아는 마음의 교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실제로 나누며 공동체를 세워 간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 준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사도행전 2장). 이 장면은 공동체가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을 지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들은 이웃의 필요를 살폈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그 필요를 채우는 힘이 되도록 삶을 열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공동체 안에서 즉시 작동했고 그 은혜가 사람들의 삶을 서로 잇는 힘이 되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각 사람이 가진 은사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말한다. 은사는 개인의 능력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통로이다. 코이노니아는 물질의 나눔뿐 아니라 재능과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지경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교제는 삶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서로를 돌보고 짐을 함께 지는 일상의 선택들이 공동체를 세우고 그 흐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사람을 통해 흘러가게 된다. 코이노니아는 말이나 감정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현실이며 함께 살아가는 걸음 속에서 깊어진다.

 

코이노니아의 변질 - 형식과 배타성의 덫

시간이 지나면서 코이노니아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가볍게 사용되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서로를 세우는 연합으로 이해되었으나 점차 정해진 활동을 수행하는 표현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모임에 참여해도 신앙의 내용을 나누는 깊이가 약해지고 사람들은 서로의 믿음을 살피기보다 정서적 친밀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교제의 목적은 분명함을 잃고 공동체는 외형적인 만남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코이노니아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보이던 공동체가 실제로는 여러 무리로 나뉘어 움직이며 보이지 않는 경계가 형성되었다. 일부는 익숙한 사람끼리 머물고 다른 이들과의 연결은 약해졌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은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전한다. 이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구분이 힘을 가지지 못하며 은혜 안에서 모든 지체가 하나의 몸으로 선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성경에서 연합은 장벽을 허물고 모든 성도가 동일한 은혜 안에 서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참된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연합이며 성령께서 만들어 내시는 생명이다. 이 연합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마음을 열어 서로를 받아들이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은 나눌 때 깊어지고 공동체는 열린 마음 안에서 다시 하나의 몸으로 서기 시작한다.
 

[코이노니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귐] 기도로 하나 된 성도의 모습을 통해 한 성령 안에서 연결되는 사랑의 연합을 선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사귐의 본질을 나타낸다. 요나의 신앙 저널


영원한 교제, 코이노니아의 회복

코이노니아는 사람들이 만든 종교 활동이 아니다라는 설명을 넘어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열어 두신 영원한 교제의 현실이며 그 교제 안에서 공동체는 생명을 얻는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라고 예수께서 기도하신 장면은 교제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보여 준다. 이 기도는 삼위 하나님의 사랑이 공동체 안에 스며들길 바라는 간구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연합의 깊이를 전하는 말씀이다.
 
코이노니아의 회복은 새로운 프로그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을 다시 받아들이는 지경에서 시작된다. 그분이 임재하시는 공동체는 관계가 중심이 되고 관계 안에서 사랑이 자라고 사랑 속에서 생명이 움직인다. 서로의 삶을 향해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며 걸어갈 때 교제는 현실로 드러나고 공동체는 하나님이 머무시는 은혜의 범위 안에서 세워진다.
 
교회가 코이노니아를 붙드는 것은 친교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사랑의 연합을 확인하는 걸음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지경에서 공동체는 새로워지고 그 나눔 속에서 교회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공동체로 선다. 그분이 함께하시는 현실이 코이노니아이며 이 흐름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오늘도 이어 간다.


코이노니아는 함께 살아가는 사랑의 실체

코이노니아는 따뜻한 분위기나 정서적 친밀함을 말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가 서로의 삶을 책임 있게 붙들며 살아가는 사랑의 실체를 가리킨다. 초대교회의 코이노니아는 말씀과 기도, 섬김과 나눔이 한 흐름 안에서 이어진 삶의 연대였고,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이 자리했다.
 
오늘날 교회 또한 같은 부름 안에 있다. 신앙을 개인의 내면에만 두지 않고, 서로의 삶을 세우는 공동체적 사랑으로 나아가는 자리에서 코이노니아는 살아 움직인다. 이는 프로그램이나 행사로 설명되는 활동이 아니라,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세상으로 흘러가는 삶의 방식이다. 코이노니아는 교회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믿음의 실체이다.

 


해설(원어, 배경 주석)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 코이노니아) -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교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 koinōnia)는 교제와 나눔, 참여와 연합을 가리킨다.
어근 코이노스(κοινός, koinos)는 함께 나누는 공동의 의미를 지니며, 코이노니아는 성령 안에서 서로를 이어 주는 사랑의 연합을 드러낸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κοινωνίᾳ koinōnia, 코이노니아)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사도행전 2:42)
여기서 코이노니아는 말씀과 예배, 기도와 떡을 나누는 삶이 이어지는 흐름을 말하며 초대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ekklēsia)는 이 나눔 안에서 하나가 된 공동체로 나타난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κοινωνία koinōnia, 코이노니아)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κοινωνία koinōnia, 코이노니아)이 아니냐”(고린도전서 10:16)

이 말씀에서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연합을 보여주며 성찬을 통해 성도는 한 몸으로 세워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의 교제(κοινωνία πνεύματος koinōnia pneumatos, 코이노니아 프뉴마토스)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빌립보서 2:1–2)

‘성령의 교제’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사랑의 결속과 내적 연합을 드러낸다. 코이노니아는 성령이 세우시는 사랑의 연결 속에서 깊어지고 공동체는 그 흐름 안에서 서 간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κοινωνία koinōnia, 코이노니아)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한일서 1:3)

이 말씀은 코이노니아가 하나님과의 교제에 동참하는 참여적 관계임을 보여주며 에클레시아는 코이노니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로 드러난다.

 

참고문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2005
존 스토트, 그리스도인의 교제, IVP, 2010
본회퍼, 나를 따르라, 복있는사람복 있는 사람, 2014
본회퍼, 성도의 공동생활, 복있는사람복 있는 사람, 2012
존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 디모데, 2017
팀 켈러, 복음과 삶, 두란노, 2014
유진 피터슨, 메시지, 성서유니온, 2013
김회권, 교회, 생명의 공동체, 성서유니온, 2019
A. W. 토저, 하나님을 추구함, 생명의 말씀사, 2015
헨리 나우웬, 상처 입은 치유자, 두란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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