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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장로는 그리스도의 절대적 통치를 위탁받아 집행하는 부르심의 공동체 내 리더다. 성경이 규정하는 목회자의 본질과 장로의 사명을 실재적으로 회복할 때 교회는 세상의 본이 되는 거룩한 공동체로 견고히 선다.
말씀과 본으로 교회를 이끄는 목사와 장로
지도자는 주님이 맡기신 양을 책임지는 자
![[목사와 장로, 교회를 세우는 직분의 본질 ③] 강단 위에서 성경을 펼쳐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의 직분을 통해 말씀 중심의 교회를 선포한다. 진리를 본으로 보여주며 교회를 세워가는 헌신의 실제를 나타낸다. 요나의 신앙 저널](https://blog.kakaocdn.net/dna/c3Jgtg/dJMcagDMWvt/AAAAAAAAAAAAAAAAAAAAAOZ1VUx45h2uBvI3Rq-YDcm0eep14Gnt4sZyV57jEMsW/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80239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s0rZzEQosCKgWflTMjp0Vhdrs9c%3D)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이 공동체를 돌보도록 사람을 부르시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이 부르심은 직책이나 역할을 먼저 떠올리기보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세우실 때 그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묵상하게 만든다. 목사와 장로의 이름은 제도적 구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성경은 그들의 존재가 말씀을 품고 공동체 앞에 서는 일에서 깊어졌다고 증언한다. 그래서 교회의 직분은 설명보다 살아 있는 행동과 실천이 연결될 때 그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
오늘 많은 교회에서 직분의 본래 의미가 퇴색하는 이유는 직분의 중심이 역할과 개개인의 능력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설교와 프로그램은 풍성한데 그 말씀을 품고 견뎌낸 리더의 본을 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성도는 설명보다 본을 보고 자라고 지도자의 삶은 강단의 메시지보다 더 선명한 가르침이 된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든 반드시 돌아가야 할 질문이 있다. “하나님 앞에 먼저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교회가 바로 서는 길은 결국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 직분은 하나님이 공동체를 다루시는 방식 안에서 살아 있는 소명자과 사명을 동시에 짊어지는 책임이다. 목사와 장로가 말씀을 통해 양육의 방향을 잡고 삶으로 그 길을 먼저 걸어가며 눈물과 인내로 공동체를 이끌 때 교회는 스스로 길을 찾는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섬김은 바닥에서부터 공동체를 떠받치는 힘이었다. 그분을 따르는 리더가 그 낮아짐을 품을 때 교회는 세상의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이게 된다. 모본이 살아 있는 공동체는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고, 외형이 조용해도 그 안에서 강한 생명이 자란다.
본이 사라진 리더십의 위기
오늘 교회가 겪는 문제는 리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는 본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타난 신앙의 혼란이다. 화려한 언변으로 포장된 설교는 많지만 그 설교를 뒷받침하는 진리는 사라지고 세상 정보로 가득한 메시지는 풍성해졌지만 그 메시지에 들어 있어야 할 진실이 담겨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진리와 성경의 진실된 가르침 대신 세상 정보 지식이 남발되는 '말씀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참과 거짓을 분별해야 하는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정보와 말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지도자의 행동과 태도는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그만큼 성도는 말이 아닌 삶을 통해 지도자를 판단하게 된다.
최근의 교회 갈등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 교리 문제보다 지도자의 태도·결정·일상의 일관성 부족에서 비롯된다. 목회자의 언행 불일치, 장로의 권위 남용, 공동체 내 갈등 조정 실패 등은 신앙의 본질보다 구조나 사역 방식의 문제로 표면화되지만 뿌리를 따라가면 결국 지도자의 삶에서 드러나는 모본의 결핍이 핵심이다. 성도는 지도자의 영적 깊이를 설교보다 먼저 삶에서 읽는다. 성경적 리더십은 말보다 삶이 앞서야 하는데 이 순서가 무너질 때 교회는 진리를 향한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
성경은 지도자를 하나님의 통치를 몸소 입증하는 본의 실체로 세운다. 베드로전서 5:3 (지도자의 태도)은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명시하며 이는 지도자가 거룩한 신앙의 이정표로 서야 함을 확정한다. 참된 본은 외적인 권위가 아닌 말씀 앞에 직면하여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자기를 복종시킨 자에게서 발현된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내한 흔적이 곧 본의 증거다. 성도는 이 실재적인 본을 지표 삼아 믿음을 공고히 구축하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갈망하며 행진한다.
요한복음 10:27 (목자의 음성)은 주님의 양이 수많은 소음 속에서 오직 목자의 음성만을 분별하여 따르는 존재임을 확정한다.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는 명령은 지도자에게 위탁된 주님의 성도들을 다시 오실 때까지 책임 있게 보전하라는 거룩한 부르심이다. 교회의 지도자는 주님이 친히 맡기신 양 떼를 대리하여 돌보는 '위탁받은 목자'로서의 소명을 수행한다.
양은 화려한 언변보다 목자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신실함과 일관된 태도를 더 먼저 알아본다. 신앙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갈 때 그 삶이 하나의 ‘음성’이 되어 성도에게 들린다. 오늘 교회가 겪는 어려움은 이 음성이 흐려졌다는 데 있다. 지도자의 삶에서 복음의 진실이 사라지면 성도는 방향을 잃고 공동체는 흩어진다.
목사·감독·장로, 이름은 달라도 사명은 하나다
신약에서 등장하는 목사(포이멘, ποιμήν, poimēn, 양을 먹이고 지키는 자), 감독(에피스코포스, ἐπίσκοπος, epískopos), 장로(프레스뷔테로스, πρεσβύτερος, presbýteros)의 직분이 등장한다
포이멘(목자)은 양 무리를 먹이고 보호하는 목양의 심상을 투영하며 직분의 근원적인 친밀함을 입증한다. 장로는 공동체 내부에서 신앙의 무게를 견고히 지탱하는 존재를 확정하며 감독은 공동체의 평안을 사수하는 통치적 책임을 명시한다. 이 세 명칭은 단일한 사명을 세 가지 각도에서 조명하시는 하나님의 입체적 경륜이다.
베드로전서 5:3 (지도자의 본)에서 ‘본이 되라’(티포스, τύπος)는 명령은 신약의 모든 직분을 관통하는 핵심적 원리다. 헬라어 티포스(τύπος)는 성도들이 추종할 수 있는 거룩한 형상을 삶에 새긴 자 즉 공동체의 영적 이정표를 제시하는 자를 의미한다. 직분자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먼저 복종하며 순종의 길을 개척함으로 공동체를 인도한다.
직분의 명칭은 상이하나 그 목적은 오직 양 무리를 돌보는 사명으로 일치한다. 하나님은 성도를 보존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바른 방향을 제시하도록 직분자를 세우신다. 역할의 구분은 존재하나, 하나님이 의도하신 본질은 오직 양 무리를 양육하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사역이다.
직분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성경적 본질을 회복함으로 종결된다. 하나님은 외적인 명칭을 앞질러 양을 향한 사랑의 깊이와 말씀을 경외하는 태도를 근거로 사명을 위탁하신다. 명칭의 다양성을 넘어 사명의 단일성을 붙드는 순간 직분은 인간의 계급을 탈피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로 승화된다.
구약의 목자, 하나님의 리더십 원형
역사 속에서 세워진 하나님의 지도자들은 광야의 목양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 질서에 길들여진 전령들이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양을 치며 겸비함을 수련했고(출애굽기 3:1), 다윗은 들판에서 포식자로부터 양을 사수하며 생명을 보호하는 법을 체득했다(사무엘상 16:11). 그들은 제국의 왕좌를 앞질러 양의 냄새를 몸에 새긴 자들이다. 하나님은 외적인 통치 능력보다 양을 잃지 않으려는 절박한 책임과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려는 충성된 심중을 살피신다.
에스겔 34:3 (목자의 본질)은 목양의 사명을 이탈한 지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규정한다. 양 떼를 먹이는 본연의 사역을 방기하고 병든 자를 외면한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내가 친히 내 양을 먹이겠다"고 선포하시며 주권적 개입을 확정하신다(에스겔 34:15). 이는 직분의 명칭보다 양을 인도하는 실재적 삶의 궤적을 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기준이다.
이 거룩한 약속은 요한복음 10:11을 통해 완전한 실체로 구현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로 오셔서 에스겔의 예언을 육체화하셨다. 그분의 목자 됨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극치의 헌신을 통해 증명된다.
구약의 목자들은 하나님의 리더십이 지향할 성품과 방향을 제시하는 거룩한 ‘원형’이다. 이 원형은 신약의 직분자에게 고스란히 계승된다. 목사와 장로는 다시 오실 목자장 예수 그리스도께 양 무리를 위탁받아 보전하는 청지기다. 그들의 권위는 선한 목자의 심장을 소유한 인격적 실체로부터 발현된다. 구약이 제시한 목자의 기준은 오늘날 교회 지도자의 정체성을 비추는 선명한 거울이며 영원히 유효한 생명의 질서다.
![[목사와 장로, 교회를 세우는 직분의 본질 ③] 사랑과 헌신으로 세워지는 참된 리더십의 실제를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자 된 본을 따르는 사명자의 삶을 나타낸다. 요나의 신앙 저널](https://blog.kakaocdn.net/dna/bTZyBg/dJMb99YXVpY/AAAAAAAAAAAAAAAAAAAAALUQjyIl5YJRU8vmzbZyuXjeiPq93l4wZvqsC5VH3BmR/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80239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lmCxpPMgCpxnTUQnNIeIHvv24nQ%3D)
장로는 교회의 질서를 세우는 본이 되는 자
사도행전 14장 23절은 바울이 여러 교회 안에 장로를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대교회에서 장로는 공동체의 신앙을 지키는 자리였고 디모데전서 5장 17절은 장로가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사람이라고 밝힌다. 장로의 역할은 공동체를 이끌며 신앙의 방향을 분명히 드러내는 데 있었다.
구약의 목자들은 하나님의 리더십이 지향할 성품과 방향을 제시하는 거룩한 ‘원형’이다. 이 원형은 신약의 직분자에게 고스란히 계승된다. 목사와 장로는 다시 오실 목자장 예수 그리스도께 양 무리를 위탁받아 보전하는 청지기다. 그들의 권위는 선한 목자의 심장을 소유한 인격적 실체로부터 발현된다. 구약이 제시한 목자의 기준은 오늘날 교회 지도자의 정체성을 비추는 선명한 거울이며 영원히 유효한 생명의 질서다.
목사는 말씀과 눈물로 양을 먹이는 사명자
목사는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가장 먼저 말씀의 통치 앞에 직면하는 직분자다. 설교의 기술이나 조직 운영의 효율을 앞질러 하나님이 위탁하신 양 무리를 보전하는 사명이 목양의 본질을 결정한다. 디모데후서 4:2 (말씀의 전파)의 명령은 교회의 존재 양식을 규정하는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이다. 이는 공동체 전체의 삶을 말씀의 궤도 위에 정렬시키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다. 목사는 이 선포 앞에 먼저 붙들린 자가 되어야 하며 그의 삶 자체가 말씀을 투영하는 이정표가 될 때 교회는 비로소 진리의 질서를 따라 행진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명하신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 (베드로의 사명))는 말씀은 목사의 존재 이유를 확정한다. 여기서 강조된 실체는 지식의 전달이 아닌, 하나님이 맡기신 양 떼를 향한 주권적 사랑이다. 목사는 말씀 앞에 자신을 복종시키고 그 진리가 공동체 내부에서 생명력 있게 구동되도록 헌신하는 실천가다.
초대 교회의 목회자는 공동체의 영적 근간을 구축하는 자였다.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남긴 고백은 목양의 실재를 고스란히 투영한다.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다”(사도행전 20:31 (바울의 고별 설교)). 바울의 사역은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희생적 사랑으로부터 발현되었다.
요한복음 10:11 (선한 목자)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포이멘, ποιμήν)로 선포하셨다. 선한 목자는 양 무리의 앞에서 먼저 걸으며 생명의 길을 개척하는 인도자다. 목사는 이처럼 목자장의 음성을 경청하며 추종하는 자이며 그의 삶이 말씀과 일치할 때 성도는 목사의 언변보다 그의 헌신에 각인된 그리스도의 흔적을 목격한다. 목사의 권위는 양 무리를 향한 실재적 책임과 사랑의 실천으로부터 확정된다.
오늘 교회가 혼란을 겪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본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설교는 많지만 그 설교를 지탱하는 삶이 희미해지면 성도는 방향을 잃는다. 목사가 선한 목자의 말씀을 따라 걷는 그 길이 곧 성도의 길이 되기에 목사의 일상은 강단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목사의 사명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바뀔 수 없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자리가 곧 교회를 바로 세우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본이 사라진 교회와 다시 세워야 할 리더의 자리
오늘 교회가 흔들리는 근본 이유는 교리의 복잡함보다 삶으로 드러나는 본이 약해진 데 있다. 성도는 설교의 설득력보다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삶을 먼저 본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 신뢰는 금세 무너지고 신뢰가 사라지면 어떤 메시지도 마음에 닿지 않는다. 교회가 겪는 많은 어려움은 결국 본을 잃은 지도자의 현실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가 불안정하고 신앙의 언어가 가벼워질수록 교회는 말보다 삶을 요구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을 통해 지도자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선제적으로 육체화할 것을 명령한다. 지도자가 진리의 본을 따라 걷는 필연적 행보는 공동체의 생존 방향을 결정하는 절대적 이정표다. 이 선포는 초대 교회의 존립을 지탱한 실재적 기준이다. 교회는 이 거룩한 본을 동력 삼아 전진하며 본이 가려지는 순간 공동체는 방향을 상실한다. 신앙은 결국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인격의 실체를 통해 전수된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에서는 지도자의 말이 많아지고 삶의 깊이가 옅어지는 장면이 종종 드러난다. 성도는 말씀의 줄거리보다 말씀을 전하는 이의 진실을 찾으며 그 진실이 흐려질 때 마음도 멀어진다.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행정 개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 앞에 머물며 성도를 위해 자신을 낮추는 한 사람의 리더에게서 다시 시작된다. 교회의 회복은 언제나 그 한 사람의 눈물에서 길을 찾았다.
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영적 근간이다. 이들은 단순한 조직 관리를 넘어 공동체를 말씀으로 인도하고 삶의 궤적으로 진리를 투영하는 직분자다. 지도자의 선포는 성도에게 이정표를 제시하며 지도자의 삶은 성도의 실재적 발걸음을 견인한다. 참된 리더십은 강단의 수사를 넘어 보이지 않는 소명의 심연에서 먼저 정련된다. 하나님 앞에서 직면한 경외와 책임이 인격의 형틀을 통과하여 발현될 때 그 실체가 비로소 거룩한 본으로 확정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확증하신 리더십은 철저히 낮아지는 수종의 양식이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리라”(마태복음 20:26 (섬기는 지도자))는 선언은 세상의 가치 체계를 완전히 전복한다. 세속의 권력은 위로부터 억압하나 하나님 나라의 권세는 아래로부터 생명을 받쳐 올린다. 목사와 장로가 이 절대적 기준을 고수할 때 교회는 십자가의 좁은 길 위에서 그 정체성을 보전한다. 거룩한 본이 권위의 유일한 근거가 되며 자기 비움의 섬김이 영적인 동력을 창출한다.
참고문헌
성경전서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John Stott, The Living Church, IVP, 2007
Dietrich Bonhoeffer, Life Together, SCM Press, 1954
박윤선, 『성경주석: 디도서·디모데전서』, 영음사, 1985
R.C. Sproul, Essential Truths of the Christian Faith, Tyndale,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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