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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드러내는 일이며 강단은 그 진리가 선포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누구의 언어를 말하는가
인간의 사상은 오염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타락한 강단과 말씀의 찬탈] 설교단 위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는 목회자의 실제를 나타낸다. 인간의 지식을 배격하고 진리의 빛만을 드러내는 강단의 거룩함을 선포한다. 요나의 신앙 저널](https://blog.kakaocdn.net/dna/bcQrO1/dJMcacOXPUH/AAAAAAAAAAAAAAAAAAAAAA87VQnyt1e-L9OTaYVYbAKt0X0TinEJRYd3oFbn74hr/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80239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d5HHrQMJw50hG4S6gPv5wJsNqPs%3D)
설교 강단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리다.
설교는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통로이며 강단은 오직 그 진리만이 왕 노릇 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강단은 하나님의 입술이 되기보다 시대를 읽어내는 해석자의 자리를 탐내며 영원한 복음의 광채를 인간의 조잡한 지식으로 가리고 있다. 설교자가 성경의 권위보다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앞세운다면 그는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인간 사냥꾼에 불과하다. 지금은 설교자가 자신의 지혜를 배설하는 길을 버리고 다시금 기록된 말씀의 종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영원한 생명의 계시와 가변적인 인간 사상의 충돌
설교의 강단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다.
인간의 사상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부패하고 변개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영원한 질서로 서 있다.
성경은 사람이 세상의 지식이나 이론에 기대어 연명하는 한계를 넘어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분명히 증언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태복음 4:4). 이 선포는 신앙의 토대가 가변적인 세상 물질이나 사상을 넘어 영원한 말씀에 있음을 명시한다.
철학은 세상의 관점에서 인간을 위로하려 하나 말씀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의 실상을 폭로하고 치유한다.
인간의 사상은 화려해 보이나 결국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사라질 뿐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이사야 40:8). 설교자가 성경에서 일으키신 말씀을 붙들 때 비로소 강단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진리의 현장이 된다. 인간의 사상보다 깊고 오래된 이 계시의 언어가 선포될 때 비로소 죽은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설교자는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자의 가면을 벗고 영원한 생명을 수종 드는 말씀의 종으로 서야 한다.
오염된 이성의 한계와 스스로 역사하는 말씀의 권능
타락 이후 인간의 이성은 부패했다.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계획은 하나님 보시기에 항상 악할 뿐이며 이러한 오염된 지혜로 복음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복음을 인간의 판단 아래 가두는 가증한 행위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세기 6:5). 죄로 부패한 지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며 인간의 철학은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을 가리는 가리개로 작동할 뿐이다.
“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고린도전서 3장 19절)
말씀은 스스로 능력을 가진 생명의 언어이기에 그 자체로 완전하며 충족하다.
설교자가 말씀에 세상적 논리를 덧붙이려 하는 것은 말씀의 권능을 불신하는 행위다. 복음은 오직 성령이 밝히시는 은혜로만 수용되는 진리이며 사람의 지식은 이 광활한 생명을 담아내기에 너무나 작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6:63).
성령이 진리로 마음을 여실 때에만 복음은 생명으로 다가오며 이는 인간의 사고를 초월하여 역사하는 말씀 특유의 주권적 권능이다. 강단의 힘은 설교자의 세련된 언변을 넘어 말씀 스스로가 증거하고 역사하는 그 절대적 위엄에서 나온다.
나아가 기록된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실재적 통치력을 발휘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브리서 4:12). 설교자는 말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조자의 자리를 떠나 이미 살아 역사하는 말씀의 위엄 앞에 떨며 그 통로를 열어젖히는 수종자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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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대언자로 부름받은 설교자의 사명과 심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으리니 네가 말할 것을 내가 가르치리라”(출애굽기 4:12).
עַתָּה לֵךְ וְאָנֹכִי אֶהְיֶה עִם־פִּיךָ וְהוֹרֵיתִיךָ אֲשֶׁר תְּדַבֵּר׃ (앗타 레크, 브아노키 에히예 임 피카, 브호레티카 아쉐르 트다베르)
하나님은 모세의 입술을 붙드셔서 자신의 말씀을 드러내셨다.
모세가 전한 말은 그의 판단을 떠나 오직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애굽기 4:12).
설교자는 이 부르심의 흐름 위에 서 있는 자다.
하나님은 모세와 예레미야의 입술을 직접 붙드셔서 자신의 말을 그들의 입에 두셨다. 이 사명은 예레미야의 기록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예레미야 1:9, 개역한글).
설교자는 자신의 사상을 전하는 자유인의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도록 세움 받은 부름의 통로다.
강단에서 드러나는 말은 설교자의 개인적 판단을 떠나 오직 하나님이 맡기신 엄중한 진리여야 한다. 강단은 천국의 언어를 선포하는 보좌이며 설교자의 개인적 소견을 배설하는 무대와는 본질적으로 분리된 거룩한 곳이다.
설교의 유일한 중심은 말씀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1). 그리스도만을 선포하고 그분만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강단의 존재 이유다.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생명에서 드러난다.
이 생명은 성령이 마음을 밝히실 때 나타나는 실제이며 사람의 말이나 판단을 초월하여 역사하는 은혜다.
설교자가 본분을 잊고 인간의 사상을 섞는 순간 강단은 영혼을 죽이는 참혹한 현장으로 전락한다.
설교자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엄중한 명령 앞에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2).
인간의 말은 심판의 기준이 된다
동시에 설교자는 자신이 뱉는 모든 언어가 심판의 기준이 됨을 두려움으로 기억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 12:36-37).
주께서는 우리가 뱉는 모든 언어의 무게를 이토록 엄중히 경고하신다.
강단의 언어는 세상의 초등학문을 넘어 오직 천국의 신비를 담아내는 거룩한 도구여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언하는 자이며 그가 선포한 모든 말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심판의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의 지식과 사상을 전하려는 사사로운 자유를 버리고 오직 말씀에 매여야 한다.
설교자가 말의 엄중함을 망각할 때 강단은 사람의 유희를 위한 무대로 전락하며 복음의 광채는 가려진다. 설교자가 인간의 지식과 철학을 섞어 전한다면 그는 영혼을 노략하는 인간 사냥꾼의 길을 걷는 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완전한 빛이며 인간의 섞인 말은 오직 그 영광의 빛을 가릴 뿐이다.
설교에 인간의 철학과 논증을 배제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간의 사상은 가변적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불변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논리는 죄로 인해 오염되었으나 말씀은 스스로 역사하는 생명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 설교자는 말씀의 대변자라는 본분에 충실해야 하며 강단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만이 선포되는 보좌여야 한다.
설교자는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자의 위치를 떠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하는 증인으로 서야 한다.
강단이 말씀에서 이탈할 때 교회는 침몰하며, 강단이 말씀 위에 굳게 설 때 비로소 교회는 생명력을 회복한다.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기보다 오직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며 성령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오늘의 설교자는 다시금 준엄한 말씀 앞에 서야 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디모데후서 4:2). 이것이 하나님이 설교자에게 부여하신 영원히 변개치 않는 명령이다.
참고문헌
한글 개역판 성경 인용
창세기 6:5 (인간의 마음과 계획의 부패)
출애굽기 4:12 (모세의 입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40:8 (영원히 서 있는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 1:9 (예레미야의 입에 두신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4:4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인생)
마태복음 12:36-37 (말에 대한 심판 날의 심문과 정죄)
요한복음 1:1 (태초에 계신 말씀이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6:63 (주께서 이르신 말의 영적 생명력)
고린도전서 3:19 (하나님 앞에 미련한 세상 지혜)
디모데후서 4:2 (항상 힘써야 할 말씀 전파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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