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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의 실제 사례를 통해 십일조의 본질적 목적을 규명하고 현대 성도가 마주한 부채와 믿음의 상관관계를 성경적 원리로 고찰한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경적 실체

본 글은 앞서 게재한 십일조에 관한 논증을 잇는 후속 글이다. 앞선 글은 십일조가 아브람과 야곱의 고백에서 시작되어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그 의미가 분명해지는 흐름을 성경으로 살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고백으로 성경 전반에 흐르는 원리로 드러난다.
이 글은 그 고백이 성경 안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질서로 나타나는지를 말씀의 맥락 속에서 정리한다. 구약 시대 십일조가 공동체 안에서 수행한 역할을 살피고 신약에 이르러 그 목적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성경의 증언으로 따라간다. 또한 오늘 성도들이 마주하는 부채의 현실 속에서 십일조가 어떤 신앙의 자리에 놓이는지도 함께 다룬다.
구약에서의 십일조와 그 역할
구약 시대의 십일조가 토지 소산물 위주로 기록된 배경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주된 경제 구조가 농경과 목축이었던 사실에 근거한다. “땅의 십분의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레위기 27:30)는 말씀은 십일조가 출발하는 지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땅의 곡식과 나무의 과실은 여호와께 속한 성물(קֹדֶשׁ, 코데쉬, 거룩,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의 구별)로 선언되었고 이스라엘은 그 땅에 거주하는 객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인식했다. 십일조는 소산의 일부를 구별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땅과 소득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질서로 작동했다.
성소까지의 거리가 먼 경우 소산을 돈으로 바꾸어 가져가도록 허락하신 질서는 드림의 형태보다 주권의 고백이 중심에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성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네 손에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신명기 14:24-25)라고 하신 말씀은 모든 소득이 하나님의 복에서 비롯됨을 일상의 현장에서 유지하도록 이끌었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세기 14:20)는 기록은 이 흐름을 삶 전체로 확장한다. 전쟁의 전리품 가운데서 드려진 십일조는 농경의 소산을 넘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소득을 구별하는 고백으로 나타났다.
말라기 3장에서 언급된 십일조에 관한 경고는 당시 무너진 공의를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촉구였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다고 꾸짖으시며 십일조와 헌물을 거론하셨다. 여기서 도적질을 의미하는 원어 '가잘' (גָּזַל, 탈취하다, 빼앗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기 소유로 삼으려는 마음의 이탈을 가리켰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불의가 만연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복술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말라기 3:5)는 말씀은 십일조 명령의 배경을 설명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라는 명령은 단순히 재정을 확보하라는 뜻을 넘어선다. 그것은 성소의 사역자들이 직무를 계속하게 하고 공동체 내의 굶주린 이들을 보살피는 신앙의 공의(מִשְׁפָּט, 미쉬파트, 바른 질서, 판단)의 질서를 복구하라는 준엄한 선언이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 하늘 문이 열리고 복이 쌓이는 역사를 약속하시며 백성들의 무너진 경외심을 다시 세우셨다.
십일조의 본래 목적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의 유지와 보호에 있었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민수기 18:21)라는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의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셨음을 밝힌다.
하나님은 성막 봉사를 맡은 레위인에게 땅의 기업을 주지 않으시고 공동체의 십일조를 분깃으로 정하셨다. 이 말씀은 예배의 사역이 지속되도록 하나님께서 생계의 질서를 함께 세우셨음을 드러낸다. 십일조는 성막 봉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공동체의 책임으로 작동했다. 신명기는 이 질서가 공동체 전체를 향해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신명기 14:28-29)는 말씀은 공동체 안의 연약한 지체들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드러낸다. 구약의 성도들은 이 질서를 통해 소유의 근원이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고백하며 공동체 안에서 맡겨진 책임을 감당했다.

신약에서 십일조의 변화와 목적
신약 시대에 이르러 십일조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그 중심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태복음 23:23)는 말씀은 드림이 삶의 행위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십일조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 안에서 공의와 긍휼과 믿음이 함께 드러나는 정체성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드림의 방향을 삶 전체로 확장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구별하는 고백은 정의로운 판단과 이웃을 향한 긍휼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이어졌다.
성전세 사건에서도 예수님의 태도는 이 흐름 안에 놓였다. 예수님은 성전세에 관한 질문 앞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하셨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 드리는 질서가 공동체 안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배려 속에서 이어짐을 보여주었다.
이 정신은 초대교회 안에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도들은 각자의 소유를 기쁨으로 구별하여 공동체의 필요를 채웠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사도행전 2:44-45)는 기록은 성도들이 삶으로 드린 고백을 증언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도록 세워진 질서를 전하며 사역의 지속이 공동체의 책임 안에 놓여 있음을 밝혔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린도전서 9:13-14)는 말씀은 이 원리를 확증한다. 신약 교회에서 드림은 은혜의 고백으로 이어졌고 공동체를 세우는 질서로 작동했다.
현대 성도의 십일조와 믿음
오늘날의 십일조는 성경이 증언해 온 원리와 목적 위에서 이어진다. 십일조는 교회의 공적인 사역을 지탱하고 말씀의 사역이 지속되도록 하는 질서로 작동한다.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고아와 과부로 상징되는 연약한 이웃을 돌보는 통로로 기능한다. 성경은 객과 나그네와 가난한 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배부르게 되는 구조를 십일조의 목적 안에 포함시킨다.
교회의 재정은 이 말씀의 흐름 속에서 예배의 유지와 이웃의 보호라는 방향을 함께 품는다. 성도들의 드림은 하나님의 전을 온전하게 세우고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드림의 태도를 마음의 중심과 믿음의 자리에서 설명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린도후서 9:7)는 말씀은 드림이 자원함과 기쁨 안에서 이루어지는 질서임을 보여준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며 성도의 신앙 고백이 삶의 질서로 표현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물질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살피신다고 증언한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고백이 일상의 경제 속에서 드러나는 자리로 기능한다. 이 고백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감사 안에서 형성되었다.
현대의 삶 속에서 성도는 부채라는 현실과 함께 십일조의 문제를 마주한다. 성경은 드림의 기준을 형편의 크기보다 믿음의 자리에서 설명한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태복음 6:11)라는 기도를 통해 삶의 필요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게 하셨다.
이 말씀은 물질의 여유와 결핍을 넘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삶의 중심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빚이 많고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자일지라도 믿음과 감사와 기쁨으로 할 수 있다면 드림의 길을 걷는 것이 마땅하다. 반면 기쁨 없이 억지로 행하는 드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심에서 벗어난 행위가 된다. 십일조는 부담의 크기를 재는 문제가 아니며 하나님의 주권을 어디까지 인정하는가를 드러내는 믿음의 고백이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축복의 통로임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 이 드림은 물질의 많고 적음이나 삶의 조건을 넘어서 마음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한다. 성경은 기쁨으로 드려지는 손길이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는 고백인 것을 증언한다.
부채와 환난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드려지는 고백은 삶을 믿음의 반석 위에 세우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돌려드리는 믿음은 성도의 삶이 평강과 신뢰 안에서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고백하는 기본 질서임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개역개정 성경 (Holy Bible, KRV)
창세기 14장, 28장: 아브람의 십분의 일 드림과 야곱의 서원 고백
레위기 27장: 여호와의 성물로서의 십일조 규례
민수기 18장: 레위인의 기업으로 주신 십일조의 질서
신명기 12장, 14장: 예배와 공동체 나눔(객, 고아, 과부)의 실제
말라기 3장: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지 않는 마음에 대한 경고
마태복음 5장, 23장: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예수님 말씀과 드림의 본질
고린도후서 9장: 인색함 없이 즐겨 내는 성도의 연보 원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 대요리문답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 및 예배의 중심 원리에 관한 조항
『구약·신약 신학사전(ThD/TDNT)』 관련 원어 항목
코데쉬(קֹדֶשׁ): 거룩,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의 구별
미쉬파트(מִשְׁפָּט) 공의, 바른 판단과 정의
가잘(גָּזַל): 빼앗다, 탈취하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소유로 삼는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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