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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성경과 현대 번역본의 차이를 본문비평의 관점에서 살피며, 사라진 구절 논쟁이 성경의 신뢰성과 번역 철학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사라진 구절, 지워진 말씀인가 더 깊은 진실인가
본문비평이 드러낸 킹제임스 성경과 현대 번역의 차이
![[킹제임스 성경, 사라진 구절의 진실 ②] 킹제임스 성경과 촛불을 통해 말씀의 보존과 번역의 거룩한 여정을 선포한다. 진리를 수호하는 신앙의 불빛이 영원히 지속됨을 나타낸다. 요나의 신앙 저널](https://blog.kakaocdn.net/dna/EGQl5/dJMcaiVW8hP/AAAAAAAAAAAAAAAAAAAAADCguSFqxdlUbS_-8Jlq4lYFGzdFeSsjYRzBTJmwiPD1/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80239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pLNP6oKzJ6ANLDNNHt59k8F5NWk%3D)
킹제임스 성경과 현대 번역본을 둘러싼 논의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 본문이 전해온 길의 차이다. 특정 구절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문제는 단순한 편집의 선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본 전통이 오랜 세월 각기 다른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결과였다.
교회가 어떤 본문을 더 신뢰해 왔는지, 그리고 그 본문이 어떻게 오늘의 성경으로 이어졌는지를 살피는 일은 자연스럽게 성경의 권위와 신뢰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본문비평은 이 과정을 무너뜨리는 학문이 아니라, 말씀을 어떤 길을 통해 받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도구에 가깝다.
사본의 역사와 번역의 흔적을 천천히 따라가 보면, 사라진 구절로 보이는 부분들도 각 전통이 품어 온 신앙적·역사적 여정을 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 글은 킹제임스 성경 논쟁의 두 번째 흐름을 다루며, 본문이 남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겨났는지를 신학과 역사, 사본의 결을 따라 정리하려는 자리다.
킹제임스 성경, 논쟁은 왜 반복되는가
KJV이 자리해 온 시간을 돌아보면, 이 번역이 단순한 영어 성경의 한 형태를 넘어선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1611년에 처음 인쇄된 이후, 이 번역은 영어권 교회가 신앙의 언어를 배우고 예배의 호흡을 만들어 가던 자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기도하던 수많은 세대의 기억 속에서 KJV은 신앙의 울림을 지닌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그 긴 시간 속에서 언어의 변화, 사본 연구의 진전, 그리고 더 오래된 자료의 발견이 차례로 이어졌고, 다양한 번역본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이런 흐름이 맞물리면서 KJV과 현대 번역본 사이에 보이는 차이는 어느 한쪽의 결함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시대와 사본 전통에서 흘러온 결의 차이에 가까웠다.
말씀을 대하는 마음이 깊을수록 이런 차이는 민감하게 느껴지곤 한다.
어떤 공동체는 KJV의 언어 속에서 깊은 신앙의 울림을 경험해 왔고, 어떤 공동체는 새로운 사본 자료를 참고한 번역을 통해 말씀의 의미를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고 여겼다.
특히 한국에서는 익숙하게 읽어 온 개역과 개정판과 KJV 사이의 차이가 성도들에게 빠르게 눈에 띄면서, 그 차이를 곧바로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흐름도 생겼다.
더 이른 헬라어 사본을 뜻하는 프로테라 헤이로그라파 (prótera cheirógrapha, πρότερα χειρόγραφα)가 연구되기 시작한 이후에는, 본문이 어떤 길을 통해 전해졌는지 확인하는 일이 성경학의 중요한 과제로 자리 잡았다.
본문비평의 목적도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말씀의 권위를 약화시키려는 작업이 아니라, 본문이 걸어온 길을 정직하게 살피고 신자들이 말씀을 더 바르게 들을 수 있도록 돕는 일에 가깝다. 서로 다른 번역본이 교회 안에서 공존해 온 이유도, 텍스트의 차이가 신앙을 흔든다는 판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마다 다른 언어의 그릇 속에서 전해져 왔다는 경험 때문이다. 텍스트의 차이가 신앙을 흔든다는 판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마다 다른 언어의 그릇 속에서 전해져 왔다는 경험 때문이다.
그래서 KJV 논쟁이 오랜 세월 반복되는 모습은 성경이 손상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말씀을 어떻게 지켜야 한다는 열망이 각 전통 안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영국 정치·교회사의 맥락
KJV이 태어난 시대를 돌아보면, 이 번역이 단순히 학자 몇 사람이 모여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 당시 영국 사회가 겪고 있던 정치와 신앙의 긴장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먼저 떠오른다.
1611년은 종교개혁 이후의 혼란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시기였다. 국교회가 자리를 잡아가던 가운데, 청교도와 가톨릭, 성공회 내부의 여러 흐름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왕권을 둘러싼 민감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었고, 교회의 언어를 하나로 모아 예배의 질서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제임스 1세가 성경 번역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한 이유도 이 배경과 맞닿아 있었다.
당시 널리 읽히던 제네바 성경은 신앙의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번역이었지만, 왕권을 직접 언급하는 각주들이 불편한 문제를 남겼다. 왕은 교회의 질서를 안정시키고, 새로운 국가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 예배에서 사용될 정본 성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들은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과 헬라어 공인본문, 곧 텍투스 레셉투스 (Textus Receptus, Τextus Receptus)라 불리는 전통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번역의 방향은 원문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살리는 길에 가까웠고, 의미를 넓게 풀어 쓰기보다 문장 하나하나의 결을 따라가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이 방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KJV의 가장 강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문장을 옮길 때 사용된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berēšît bārā’ ’ĕlōhîm,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의 간결한 흐름이 그대로 영어 문장 속에서 살아남았고, 예배당에서 낭송될 때의 울림은 정치적 논쟁과 신학적 분열을 넘어 회중의 마음에 큰 인상을 남겼다.
당시의 역사와 교회 상황을 떠나 KJV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 번역이 시대적 갈등을 잠재우려는 정치적 판단과 예배의 언어를 새롭게 세우려는 교회의 열망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번역은 책상 위의 작업이 아니라, 한 나라의 신앙과 언어를 새로 세우는 긴 여정의 일부였다.
![[킹제임스 성경, 사라진 구절의 진실 ②] 요한일서 5장 7절 헬라어 원문을 통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증언을 선포한다. 번역 사본 연구의 실제와 신앙의 역사를 나타낸다. 요나의 신앙 저널](https://blog.kakaocdn.net/dna/buzNIf/dJMcai9uitz/AAAAAAAAAAAAAAAAAAAAAEuSbMy3NxFsvnDBWhf0L6wBeFjyFdRonv85HPG94uSV/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80239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HCMYt%2FS2hmjKeqLsNf0H8j8Usk4%3D)
신대륙에서의 확산과 문화적 힘
신대륙으로 향하던 이들은 새로운 땅에서 신앙의 숨을 잇기 위해 익숙한 성경을 품고 건너갔다.
초기에 청교도와 분리파가 손에 들었던 성경은 제네바 번역이었다. 회중이 오랜 세월 사용해 온 성경이었고, 그들의 예배와 기도의 언어를 채우던 책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미국의 교회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예배에서 읽히는 문장과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의 울림, 그리고 회중이 암송하던 구절들의 리듬이 자연히 KJV의 언어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국가가 정한 법령의 영향이라기보다, KJV이 가진 운율과 단어의 호흡이 예배의 공간과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신앙의 언어는 책상 위에서 결정되지 않고,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하던 자리에서 서서히 자리 잡았다.
대각성 운동이 시작된 뒤에는 이 흐름이 더 넓게 퍼졌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 같은 설교자들은 KJV을 통해 말씀을 전했고, 그들의 설교는 회중에게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신앙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호소력으로 다가갔다.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성령의 검”이라는 표현처럼, 말씀의 한 구절이 사람들의 마음을 깊게 흔드는 장면들이 예배당 곳곳에서 이어졌다. 신대륙의 교회는 이렇게 KJV을 통해 신앙의 감정과 결심을 만들어 가는 경험을 누리게 되었고, 그 경험이 세대를 지나며 하나의 전통처럼 쌓여 갔다.
말씀의 언어는 신앙의 자리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대륙의 정치와 문화까지 그 언어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독립선언문에 담긴 표현들, 게티즈버그에서 울려 퍼졌던 링컨의 연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목소리로 전해졌던 꿈의 언어까지, 이 모든 언어 뒤에는 KJV에서 익힌 단어의 결과 문장의 호흡이 묻어 있었다.
한 시대의 성경이 이렇게 신앙을 넘어 사회의 언어를 만드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 사례는 흔치 않다. 신대륙에서 KJV이 확장된 과정은 단순한 번역본의 확산이 아니라, 말씀이 한 사회의 심장에 어떤 울림을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긴 이야기였다.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비평 도입
KJV이 만들어졌던 17세기 초의 세계는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본 연구의 범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제한적이었다.
당시 번역자들이 손에 쥘 수 있었던 자료는 주로 중세 이후의 필사본들이었고, 더 오래된 사본에 접근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시간이 흐르며 고고학과 문헌학이 발전하고, 지중해 지역과 이집트 사막에서 보존 상태가 뛰어난 사본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을 때 교회는 이전의 어떤 세대도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었다.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 그리고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던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이르기까지, 신대륙의 발견만큼이나 새로운 성경의 지도가 열리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말씀의 길을 따라가던 교회는 이 자료들을 통해 본문이 어떤 시간을 지나 현재의 모습에 도달했는지를 더 깊이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사본 연구는 단순히 오래된 문서를 찾아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한 문장이 어떤 지역에서 복사되었는지, 어떤 필사자가 어떤 전통에 따라 글을 남겼는지, 같은 구절이 서로 다른 필사 계통에서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하나씩 확인하는 일에 가까웠다.
그래서 사본의 연대를 뜻하는 크로놀로기아 (chronología, χρονολογία), 지리적 흐름을 가리키는 게오그라피아 (geōgraphía, γεωγραφία), 그리고 필사 전승을 말하는 파라도시스 (parádosis, παράδοσις)가 본문을 해석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다. 후대 사본 수백 개에서 발견되는 문장이 초기 사본 몇 개에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고, 이런 차이는 단순한 누락이 아니라 각 시대의 필사 관습과 전승의 방향을 보여주는 자료로 읽혔다. 교회는 이런 연구를 통해 말씀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 말씀이 걸어온 길을 더 정직하게 살피려는 시도를 이어 온 것이다.
현대 번역본이 더 이른 증거를 바탕으로 본문을 정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새로운 번역이 등장할 때마다 KJV과 비교해 구절의 길이가 다르게 보이는 상황이 생겼지만, 그 차이는 의도된 삭제가 아니라 사본의 흐름을 따라가며 선택한 결과에 가까웠다.
초기에 가까운 사본 몇 개가 어떤 구절을 포함하지 않을 때, 번역자는 그 문장이 후대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을 자연스레 검토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경의 본문은 더 오래된 증언에 근거해 다시 정리되어 왔고, 그 정리는 교회가 말씀을 더 분명히 듣기 위한 길이었다. 본문비평은 말씀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 권위가 어떤 시간을 지나 오늘의 텍스트로 이어졌는지를 확인하는 도구에 가깝다. 교회는 이렇게 말씀의 길을 하나씩 더듬으며 본문과 만나는 새로운 감각을 얻어 왔다.
한국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논리와 본문 사례
한국 교회 안에서 KJV을 유일한 권위로 붙드는 흐름은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익숙한 번역본에서 보이지 않는 문장을 발견하면 그것을 곧바로 신앙의 문제로 연결하려는 반응도 있었다. 특정 구절이 포함되었는지 여부가 신앙의 진위를 가르는 기준처럼 다뤄지기도 했고, 오래 읽어 온 번역본에 대한 애정이 본문비평의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사본을 오래 연구해 온 학자들과 교회 전통이 보여주는 모습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세부 구절의 차이는 말씀의 훼손이 아니라 사본이 전해 온 길의 차이에서 생긴 현상이었고, 어떤 문장은 후대 사본에서만 나타났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났다. 초기 사본들 특히 헬라어 전승 초반에 속하는 자료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문장이 시간이 지나면서 필사 관습에 따라 첨가되거나 이동한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래서 KJV과 개역·개정판 사이에서 눈에 띄는 구절 차이는 신앙의 불안을 낳아야 할 문제가 아니라, 본문이 겪어 온 시간의 깊이를 보여주는 증거로 이해되어 왔다.
아래 표에 정리된 여러 본문은 이 흐름을 잘 드러낸다. 요한일서에서 흔히 언급되는 요한 콤마는 오랜 세월 삼위일체 교리를 지지하는 중요한 문장처럼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14세기 이전의 헬라어 사본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초기 자료에서는 단순히 “증언하는 이들이 셋”이라는 짧은 문장만 남아 있고, 긴 형태의 문장은 라틴어 전승을 따라 후대에 붙은 것으로 이해된다. 삼위일체 교리의 깊이는 여전히 성경 전체에서 확고히 드러나지만, 본문 속 문장이 걸어온 길을 확인하는 작업에서는 이런 차이가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마가복음의 긴 결말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 준다.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 같은 가장 오래된 자료들은 이야기의 끝을 16장 8절에서 멈추고 있지만, 이후 사본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결말이 등장한다. 교회는 오랜 세월 이 결말을 읽어 왔고, 부활 신앙의 핵심은 다른 복음서와 서신들 안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전승의 존재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본문비평이 이 긴 결말에 대한 경계를 제기한 것도 말씀의 본질을 의심하려는 일이 아니라, 복음이 어떻게 기록되고 전해졌는지를 더 넓은 시야에서 보려는 시도였다.
간음한 여인 이야기 역시 초기 사본에 보이지 않고 후대 전승에서 자리를 옮겨 다닌 사례 중 하나다. 루가복음에 붙어 있는 사본도 있고, 요한복음 안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자리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 이야기가 전하는 자비와 용서의 메시지에서 깊은 신앙적 울림을 받아 왔다. 말씀의 전승이 가진 다양성이 본문의 의미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다른 각도에서 비추는 창처럼 작용해 왔다.
사도행전의 내시 고백과 요한복음 5장,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짧은 구절들도 표에서 보듯 후기 사본에서만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 자료를 따라가 보면, 어떤 문장은 전승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덧붙여지기도 하고, 반복되는 낭독 습관에서 문장이 확장되거나 다른 위치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텍스트의 불안정성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필사자와 공동체가 말씀을 읽고 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시간의 흔적에 가깝다.
그래서 이 소제목 아래의 표는 단순히 “어떤 구절이 있다/없다”를 보여 주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본문이 지나온 길을 한눈에 보여 주며, 말씀의 전승이 얼마나 넓고 깊은 흐름 위에서 움직여 왔는지를 보여 주는 지도가 된다. 교회는 이런 다양성을 통해 말씀을 더 깊게 읽어 왔고, 특정 구절의 유무보다 말씀 전체의 메시지가 시대마다 새롭게 들려온다는 사실을 붙들어 왔다.
![[킹제임스 성경, 사라진 구절의 진실 ②] 본문 비교표를 통해 사라진 구절 속에 담긴 신학적 논쟁의 실제를 선포한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의 정통성을 나타낸다. 요나의 신앙 저널](https://blog.kakaocdn.net/dna/k8N9C/dJMcaaDHLYz/AAAAAAAAAAAAAAAAAAAAANueRtA-ED7zQxTa0cxxrLHHx-60bonUrXWAS5dxZxW4/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80239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ysfftIxFypjXrEGZlyR0g%2FL7O30%3D)
본문의 여정을 바라보며 오늘을 읽다
KJV과 초기 사본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여러 차이를 따라가다 보면, 말씀의 본문이 단일한 문장으로 고정된 채 이어진 것이 아니라 세대를 지나며 다양한 언어와 전승의 흐름 속에서 자리 잡아 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위 표에 정리된 여러 사례는 구절의 길고 짧음보다 그 문장이 어떤 시간과 공동체를 지나 오늘의 성경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에 가깝다.
초기 사본들이 남긴 기록과 후대 전승이 쌓아 올린 표현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간극이 있었고, 교회는 이 간극을 통해 오히려 말씀의 길을 더 깊이 살필 수 있었다. 본문비평 또한 이런 흐름을 따라 말씀을 정직하게 들으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져 왔다. 구절의 유무를 따져 신앙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이 아니라, 복음이 어떤 시간을 통과해 오늘 우리에게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한국 교회의 자리에서 다시 바라보면, 논쟁의 중심이 언제나 특정 번역본의 선택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말씀을 읽는 방식과 교회를 세워 온 전승의 층위를 이해하는 일이 더 깊은 질문으로 남는다.
신자들이 다양한 번역본을 접하며 말씀의 결을 여러 방향에서 느끼는 경험은 신앙을 넓히는 기회가 되어 왔다. 오래 읽어 온 번역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 번역이 걸어온 길을 함께 살피는 시선은 말씀의 깊이를 환하게 드러내 준다. 신앙의 중심은 특정 번역본이 아니라,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오늘의 삶 속에서 들려주시는 음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KJV을 존중하는 일과 그것을 절대화하지 않는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한 시대의 신앙을 형성해 온 언어적 유산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본문이 지나온 전승의 넓은 흐름을 이해하는 태도는 말씀을 더 깊게 붙드는 자리로 이어진다. 말씀은 어느 한 번역본의 형태에 머무르지 않고 세대를 통과하며 새로운 언어 속에서 다시 들려왔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 앞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경청하는 마음이며, 그 마음이 있을 때 구절의 길고 짧음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본문이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말씀의 신뢰는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그 빛은 오늘의 삶을 더욱 선명하게 비춘다.
이 글은 본문비평의 흐름을 따라, 사본과 전승의 차이가 신앙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이는 말씀의 여정을 보여 주는 흔적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번역의 문제를 넘어, 번역이 교리와 신앙의 권위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왔는지를 깊이 다룬다.
킹제임스 성경이 지닌 번역적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그 권위가 교리의 본질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지 다음 3편에서는 이 질문들을 차분히 정리한다. 이를 통해 번역을 존중하는 신앙과 말씀의 본질을 붙드는 태도가 어떻게 함께 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공통: 2편 & 3편)
- Aland, Kurt & Aland, Barbara.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 2nd ed. Grand Rapids: Eerdmans, 1989.
- Metzger, Bruce M.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 Its Transmission, Corruption, and Restoration. 4th e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 Comfort, Philip W. New Testament Text and Translation Commentary. Tyndale House, 2008.
- Scrivener, F. H. A. The Authorized Edition of the English Bible (1611).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884.
- Norton, David. A Textual History of the King James Bibl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 Wallace, Daniel B. “The Majority Text Theory: History, Methods, and Critique.” New Testament Studies 32 (1986): 321–336.
- 김현구, 『성경사본학 개론』,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2.
- 박용규, 『개혁주의와 성경의 권위』, 서울: 개혁신학사, 2015.
- 이승구, 「성경 무오와 보존 교리에 대한 개혁신학적 이해」, 『신학정론』 36권 2호, 합신대학원, 2019.
- 대한성서공회, 『성경 번역과 본문비평』,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0.
📖 킹제임스 성경 시리즈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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