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신앙 저널 | 말씀 속에서 시대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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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밝히는 성부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따라 태초 이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을 고백된 계시의 말씀이다.


태초 이전부터 계신 성부 하나님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무한하신 분이시다


 
<이 글은 성도들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더 알기 쉽도록 이해를 돕고자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적 섭리의 계시를 따라 하나님을 소개하는 글이다.>

[성부, 모든 생명의 근원 창조주 하나님] 에덴동산의 완벽한 질서 속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성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선포한다.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요나의 신앙 저널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스스로 나타내시는 계시의 기록이다.
성경의 말씀은 인간이 상상으로 만든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와 뜻을 선명하게 밝히신 증언이다.
태초 이전부터 계신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여셨는지,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를 말씀을 통해 알리고 있다. 성도는 이 기록된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이시며 성도를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며 성도는 이 계시를 통해 신앙의 중심을 세운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신 분

하나님은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창세기 1장 1절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계셨다고 증언하며 모든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성도는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설명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실존 계시로 만나게 된다. 하나님은 시작을 가지지 않으시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선언은 에흐예(אֶהְיֶה ’ehyeh, 스스로 계신 분)이며 하나님이 어떤 근거에도 의존하지 않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이 이름은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고 스스로 일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성도는 하나님이 알려주신 이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를 받아들인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영원으로 확장한다. 말씀은 태초에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다. 말씀은 로고스(λόγος logos,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와 계시)이며 창조 이전부터 성부와 함께 존재하신 성자이시다. 창세기 1장 2절은 성령께서 수면 위를 움직이셨다고 기록하며 성령의 일하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영원부터 함께 계시는 분이시다.
 
시편 90편 2절은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하나님이 시간과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성도는 성경의 증언을 따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영원히 계시는 분임을 믿음으로 고백한다. 하나님은 태초 이전부터 계신 분이시며 지금도 영원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창조하시는 하나님: 질서와 생명의 근원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혼돈 속에서 질서를 세우시는 장면을 드러낸다.
땅이 혼돈하고 비어 있었던 상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나는 출발점이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빛을 부르시고 시간을 여시며 생명이 머물 세계를 세우셨다. 이 기록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열어 가셨는지를 보여주는 계시다. 성도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마음으로 창조하셨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창조는 바라(בָּרָא bara, 무에서 일으키다)라는 히브리어로 기록된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분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며 세상이 움직이는 질서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다. 창조에 대한 고백은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이 된다.
 
창조의 장면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하심이 함께 드러난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성령이 수면 위를 움직이셨고 요한복음 1장 3절은 만물이 말씀을 통해 지어졌다고 증언한다.
말씀은 로고스(λόγος logos,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와 계시)이며 하나님은 삼위의 일하심으로 세상을 여셨다. 세상은 목적 없이 형성된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로 시작된 세계다.
 
창조 기록에 반복되는 표현은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토브(טוֹב tov, 선하고 온전함)는 하나님이 세우신 세계가 선함으로 가득하다는 의미다. 생명은 우연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서 시작되었다. 성도는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하나님의 선하심 위에 놓여 있음을 확인한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생명을 위한 환경을 정성껏 준비하셨음을 보여준다. 빛이 세워지고 땅이 드러나고 식물이 자라며 사람이 살아갈 세계가 마련된다. 하나님은 생명을 세우시며 돌보시는 분이고 창조는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한다는 것은 세상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열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이다. 세상은 하나님이 여신 세계이고 생명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생명이다. 성도는 이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질서를 세우시고 생명을 일으키시는 창조주이심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 하나님의 형상이 만든 존엄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주시는 장면을 기록한다.
이 장면은 사람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문장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가까이 두셨는지를 보여주는 계시다. 하나님은 먼 자리에서 명령하지 않으셨다. 손으로 흙을 빚으시고 자신의 숨을 주시며 사람을 일으키셨다. 성도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지으셨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생기는 네샤마(נְשָׁמָה neshamah, 생명의 숨)이다. 네샤마는 단순한 호흡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자신의 숨을 주셨다는 의미다. 사람의 생명은 자연의 흐름이나 우연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숨으로 시작된다. 성도는 이 고백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창세기 1장 27절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선언한다. 형상은 체셀렘(צֶלֶם tzelem,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사람의 존엄은 능력이나 성취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형상에서 나온다. 이 고백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려는 감정적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신분을 말하는 말씀이다. 성도는 삶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주신 형상 때문에 존엄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나님의 형상은 관계 안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은 사람을 혼자 두지 않으셨다.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음 받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공동체는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사람은 형상 때문에 관계를 향하도록 지음 받았다. 성도는 사람을 대할 때 각자의 성품과 기질보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을 기억한다.
 
사람은 사명을 가진 존재로 지음 받았다. 창세기 2장 15절은 하나님이 사람을 동산에 두시고 경작하고 지키도록 부르셨다고 말한다. 일은 벌이나 부담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다. 하나님은 의미 없는 일을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신다. 크든 작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다. 성도는 이 말씀을 따라 힘겨운 순간에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떠올릴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다는 고백은 단순한 기원 설명이 아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며 생명과 존엄과 사명을 주셨다는 고백이다. 성도는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잊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귀하게 지으셨고 지금도 그 존엄을 지키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내는 성품: 거룩과 자비의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계시의 말씀이다.  
출애굽기 34장 6절과 7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모세 앞에 밝히며 어떤 마음으로 백성에게 다가오시는지를 보여주신다. 여호와는 야훼(יְהוָה Yahweh, 스스로 계시며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며 하나님은 이름을 통해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내신다.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따르며 하나님을 알아 간다.
 
하나님의 거룩은 카도쉬(קָדוֹשׁ qadosh, 구별되고 순전한 성품)이다. 이사야 6장에서 선지자는 스랍들의 찬송을 듣는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는 고백은 하나님이 순전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거룩은 하나님께서 모든 선함의 근원이 되심을 보여준다. 성도는 이 거룩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깊이 품게 된다.
 
하나님의 자비는 헤세드(חֶסֶד hesed, 끊어지지 않는 신실한 사랑)이다. 시편 103편은 하나님이 낮아진 자를 일으키시고 죄 가운데 머문 사람을 회복시키시는 분이라고 증언한다. 헤세드는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며 성도는 이 사랑을 신앙의 중심에 두고 하나님을 신뢰한다.
 
하나님은 돌보심의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여호와 이레(יְהוָה יִרְאֶה Yahweh yir’eh,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공급을 체험하며 부른 이름이다. 하나님은 필요한 순간에 역사하시며 은혜로 이끄시는 분이다. 성도는 이 이름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삶을 세밀하게 이끄시는 분임을 확신한다.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성품은 여호와 라파(יְהוָה רֹפְאֶךָ Yahweh rofekha, 치유하시는 하나님)라는 이름에 담겨 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상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을 라파로 밝히셨다. 하나님은 생명을 회복시키시는 분이며 성도는 이 이름을 통해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믿게 된다.
 
하나님은 전능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엘 샷다이(אֵל שַׁדַּי El Shaddai, 전능하신 하나님)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밝히신 이름이다. 전능은 하나님의 능력이 언약을 반드시 이루는 능력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다. 성도는 엘 샷다이의 이름을 붙들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깊이 신뢰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성도는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일하심을 배운다. 하나님은 순전하신 분이며 신실한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공급하시고 치유하시며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따르며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간다.
 

[성부, 모든 생명의 근원 창조주 하나님] 성경과 십자가 그리고 공의의 저울을 통해 창조와 심판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실재를 선포한다.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을 나타낸다. 요나의 신앙 저널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 악을 멈추시는 선한 재판장

성경은 하나님을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으로 증언한다.
시편 9편 8절은 하나님이 정의로 세계를 판단하시고 정직으로 나라들을 심판하신다고 기록하며 하나님의 판단이 언제나 바름과 진실 위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공의는 체데크(צֶדֶק tsedeq, 바름과 정직)이며 하나님은 선함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성도는 이 공의를 따라 하나님이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시는지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론(חָרוֹן charon, 거룩한 분노)이며 악을 멈추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판단이다. 진노는 생명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며 죄가 약한 자를 삼키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하나님의 의지다.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시며 악을 드러내시고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성도는 이 진노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얼마나 크신지 알게 된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고통받는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언약을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압제 속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영광으로 이끄셨다. 이 일하심은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억압을 멈추게 하시고 약한 자를 세우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성도는 하나님이 정의의 하나님이심을 이 말씀에서 분명하게 확인한다.
 
예언서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심판은 파괴로 끝나지 않고 회복을 여는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은 죄를 드러내시고 새 생명으로 이끄시는 분이다. 회개하는 자는 용서를 받고 무너진 삶은 다시 세워진다. 공의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일하심이며 말씀은 언제나 이 공의를 통해 회복을 향하게 한다.
 
신약은 하나님의 공의를 십자가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로마서 1장은 하나님이 불의를 멈추게 하시는 분이심을 증언하고, 복음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길임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을 완성하셨다. 십자가는 공의와 사랑이 함께 나타난 자리이며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는 성도를 억누르려는 성품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하나님은 악을 멈추시는 재판장이시며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성도는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보며 신뢰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도와 함께하시며 생명을 보호하시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 언약과 행동으로 드러난 변함없는 사랑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언약으로 이어지는 사랑이다.
사랑은 헤세드(חֶסֶד hesed, 끊어지지 않는 신실한 사랑)이며 하나님은 언약을 따라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는 분이시다. 이 사랑은 변함이 없고 흔들림 없이 지속되는 은혜이며 성도는 이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마음으로 다가오시는지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확실한 언약을 주셨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잠든 아브라함 앞에서 언약 사이를 지나가시며 자신이 언약을 온전히 이루시는 분임을 드러내셨다. 언약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굳게 세워졌고, 하나님의 이름이 그 약속의 기초가 되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며 성도는 이 언약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루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된다.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따라 백성을 이끄셨다. 하나님은 억압 속에 있던 이스라엘을 자유로 이끄셨고 광야의 길을 열어 백성과 함께하셨다. 이 일하심 전체는 하나님이 언약을 사랑으로 이루시는 방식이다. 성도는 하나님이 고통하는 자에게 손을 내미시는 분임을 이 말씀에서 분명하게 본다.
 
구속은 가알(גָּאַל ga’al, 값을 치르고 되찾다)이라는 히브리어로 증언된다. 구속은 하나님이 사랑으로 잃어버린 자를 되찾으시는 일이며, 하나님은 무너진 자를 세우시고 포로 된 자를 자유로 이끄시는 분이다. 구약 전체의 구속 사건은 하나님이 백성을 끝까지 기억하시고 다시 일으키시는 사랑의 역사다. 성도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임을 깊이 깨닫는다.
 
신약은 하나님의 사랑을 성육신으로 드러낸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기록한다. 사랑은 아가페(ἀγάπη agapē,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아가페가 사람에게 다가온 결정적 사건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이루신 구속의 절정이며 성도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완전한 은혜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은 성도의 삶을 새롭게 한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억하시고 행동으로 사랑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성도는 이 사랑 안에서 회복되고 구원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된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자신의 백성을 붙드시며 지금도 성도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신약이 증언하는 하나님: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

신약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 오신 분이심을 밝히는 계시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기록한다. 말씀은 로고스(λόγος logos, 영원한 지혜와 계시)이며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성도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분이 아니라 삶과 호흡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신다. 성도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깊은 사랑으로 다가오시는지를 깨닫게 된다.
 
예수님의 걸음은 하나님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품으시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어루만지셨고 눌린 이들을 일으키셨고 홀로 남은 사람을 품으셨다. 예수님의 움직임은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에게 향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예수님은 죄에 눌린 삶을 새롭게 하셨고 상한 마음을 세우셨다. 성도는 예수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만나게 된다.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Ἰησοῦς Iēsous,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이며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들 가운데 임하셨다는 선언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를 되찾으시는 일이다. 예수님은 멀어진 삶을 불러 일으키셨고 무거운 짐을 지닌 이들을 품으셨다. 성도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확신하게 된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어떤 사랑으로 사람을 붙드시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예수님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고 십자가에서 희생을 이루셨다. 이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된 구속이며 예수님의 피는 힐라스모스(ἱλασμός hilasmos, 죄를 덮어 주시는 은혜)로 기록된다. 성도는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온전한지 깨닫는다.
 
부활은 하나님이 생명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증언한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고 새 생명을 드러내셨다. 부활은 과거의 기적이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이 이루시는 회복의 사건이다. 성도는 예수님의 부활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얻고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확신한다.
 
성령은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paraklētos, 돕는 분)이시다. 성령은 성도 안에 거하시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게 하시고 연약한 삶을 붙드신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성도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성도의 삶을 이끄시며 지금도 역사하신다.
 
신약은 하나님이 친히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음을 전하는 계시다. 성도는 예수님의 걸음과 성령의 일하심에서 하나님을 선명하게 알아 간다. 하나님은 성도와 함께하시며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삶을 일으키시는 분이시다. 신약의 증언은 하나님이 지금도 성도의 삶 가운데 머무시며 구원과 회복을 이루시는 확실한 진리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한다

잠언 1장 7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선포한다.
이 말씀은 신앙의 출발이 하나님을 향한 깊은 존중과 믿음이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혜의 문을 여는 첫걸음임을 보여준다.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삶 전체를 일으키는 진리다. 하나님은 태초 이전부터 계셨고 세상을 여셨고 사람을 지으셨고 언약을 이루셨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마음으로 일하시며 어떻게 백성을 인도하시는지 밝히 드러낸다. 성도는 이 지식을 마음에 새길 때 자신의 존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사랑으로 붙들려 있으며 하나님이 어떤 길로 이끄시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성도를 세우는 힘이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은 담대해지고 걸음은 확신으로 채워진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하심을 묵상할 때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선명해진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도의 삶을 붙드시며 새롭게 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은 성도를 굳게 세우는 은혜이며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참고문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브루스 K. 월트키, 구약신학,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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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두스 보스, 성경신학, CLC
고든 D. 피 & 더글라스 스튜어트, 하나님을 알라: 성경 전체의 메시지, 성서유니온
존 스토트, 기독교의 핵심진리, IVP
마이클 호튼, 기독교 신앙의 핵심, 부흥과개혁사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두란노
제임스 패커, 하나님을 아는 지식,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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